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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손석희가 오역해서 일본주민들 사드 철거 시위 하는거. 반븅반쉰 혀 짧은 넘 말버릇 봐라카테고리 없음 2016. 7. 1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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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감동) 손석희가 오역해서 일본주민들 사드 철거 시위 하는거...
2위.(감동) 반븅반쉰 혀 짧은 넘 말버릇 봐라
3위.(감동) 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4위.(수다) 이런 고민 여따 써도되요
5위.(감동) 요즘 박근혜정부 실세로 우병우 민정수석이 떠오르는.... 1위. 손석희가 오역해서 일본주민들 사드 철거 시위 하는거...
한 필지에 8000엔 하던 땅을 19만엔까지 보상 받고
임대료로 정부로 부터 한 필지에 30만엔 받고 있으면서도
왜? 일본 주민들이 사드 레이더 철거 시위를 하고 있는지 노제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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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위. 반븅반쉰 혀 짧은 넘 말버릇 봐라
첩이라고 하며 여성 유저 성희롱한다.
딸을 주니 마네 하는 것을 성희롱이라며 들불처럼 번져 일어나 호들깁을 떨었던 유저들 뭐하고 있냐??
그리고 한눌이는 이런 성희롱도 쎈스라고 치켜세우는구나 ㅋㅋ
한눌이 니 니온은 앞으로 니 니온을 향한 성욕에 대해서도 쎈스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ㅋㅋ
한눌이는 그런 욕 쳐먹어도 쎈스라고 이해줄 유일한 유저니 여러분들~스트레스 받으면 한눌이한테 성욕 쌍욕해서 풉시다 ㅋㅋ
제가 솔선수범해서 앞으로도 쭈~욱 한눌이한테 성욕 쌍욕할 생각입니다 ㅋㅋ<페이지 위로 이동↑(클릭)>
. 3위. 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3살 위 형은 나의 수호신이라서
키가 늦게 크고 체구도 작은 나
너무 순진해서 간혹 괴롭힘 당하기 일쑤였는데
거칠고 남자다운 성격의 형은 나를 공격하는 누구든
몇 놈이던지 단박에 때려 눕히고는 날 어부바 업고
내가 손가락을 가르키면 언제나 달리는 말이 되준
어린시절 동네에서 유명했던 우애의 형제입니다.
시간이 흘러
난 아빠를 닮아 가정적이며 성실한 삶이 되어갔고
형은 외삼춘들을 닮아 한량의 삶이 만들어집니다.
가족의 총애를 받으며 인정받고 풍족한 소년기..
가족의 냉대를 통하여 점차 밖으로 도는 소년기..
그렇게 갈린 형제는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집에서는 말 한마디 없는 형
집에서 가족들을 하나로 묶으려 드는 동생
형을 집으로 앉히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 점이 형은 큰 상처가 되었슴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뒤바뀌었다는 이야기가 거론되고
큰대를 동생이 썼기에 뒤죽박죽 되었나?
심을식을 쓴 형은 하루라도 여자가 없는 날 없었고
그 어린 나이대에 이미 여자 마스터가 된 형..ㅎ
이목구비 뚜렷한 아빠를 닮아 인물이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자에 무조건 잘하는게
우리집 3남자들 공통 성격입니다.
서로 맞지를 않아 가까이하지 않다가
동네 횟집에서 함께 소주에 얼큰히 취한 형은
밤길 밟던 깡패 기질에 그 동안 쌓인 불만이
내게 폭발했고, 나도 한창 때 불 타던 시절이라
둘은 큰 길로 나가 제대로 한판 붙습니다.
난 천호동 일대의 주점 나이트 오락실 관리
깡패 친구, 선배들과 잠시 어울렸었고
형은 전국을 돌던 깡패였으니
둘은 막싸움이 아닌 자세 잡고 격투기 경기처럼
주먹에 발질을 나누었는데 금새 구경꾼들이
수십명 몰려들었어요.
많이 취한 형이 당연히 금새 길바닥에 뻗었고
그걸로 싸움은 일단락 되었지만
분을 못이긴 형은 횟집 주방에 들어가
횟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성깔 있는 사람이 흉기들면
피하거나 도망치는게 서로 안전해요
난 형이 횟칼들고 나오는 순간 근처 산으로 뛰어
일단 피신했네요.
새벽이 찾아들어
집으로 들어갔고 엄마 아빠 누나들 난리가 났어요
형 얼굴이 일그러져 다 터져서 작은방 누워있다며
니들 싸운거 같은데 방에 들어가서 화해하라고..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보니 불은 꺼져있고
얼음팩에 얼굴을 묻은 형이 조용히 누워있어요
나는 무릎꿇고 형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는데..
순간 형이 일어나서는 베개 밑 횟칼을 내 앞에
내놓습니다.. 원래 너 오면 찌를 심산였다며
통곡을.. 그렇게 서럽게 울더랍니다..
잘못하면 동생 죽일뻔했다며.. 자책의 눈물을
아이처럼 울었고.. 나도 함께 목 놓아 울었습니다
우리가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난 시간 지날수록 평범한 직장인
형은 계속 자신의 밤길을 고집하니
우리는 벽을 만나 소통하지 못하게 됩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따로 떨어져 사는 나와 형을
뒷산 공원에 소집하셨고
배드민턴채를 아버지는 우리에게 건냅니다
달밤에 둘이 어렸을 때처럼 치고 놀으라며
그리고 아버지는 자리를 비켜 멀찍이 떨어졌고
형과 나는 토달지않고 어릴 때로 돌아가 신나게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처음으로 아버지 보는 앞에서 허락하에
담배를 나눠 피우며..
형~ 가고자 하는 삶을 동생은 빌어줬고
동생~ 가는 앞길을 형은 빌어줍니다
서로 끌어앉고 등 토닥이며
그렇게 마지막 작별을 맞이했습니다.
형을 안만난지 5년도 넘은듯
멈춘 기억도 이젠 가물가물하네요
2년전 결혼을 하여 딸을 낳았다는데
아버지를 통해 소식 들었지만
우리 형제는 가까이하면 사고가 나므로
동생은 더 이상 아무 말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어째서 형이 집에 정착하지 못하여
늘 밖으로 돌았는지는 내 나이가 점차 들다보니
이제사 그 슬픔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족들을 등지고 멀리하며
냉정을 표하는 이유중 속심 하나는
형이 현재 가족들과 유대를 잘 다지고 있으니
내가 어린 시절 받았던 단독 애정..
우리 형이 장남으로서 받고 제자리 기 펴고 살아야
나는 못난 차남으로서 그게 원래 내 자리입니다.
나는 갑부 사업가 누나들에 밉보여서 잊혀져가고
어느덧 형은 정신차리고 건실한 직장인이 되어
보상으로 아파트 한채 지원 받아 잘 산답니다
참으로 잘된 일, 내 오래도록 계획이 이뤄졌네요.
홀로 십수년을 자수성가 한답시고
낮은 바닥을 두루 섭렵하여 비록 외로운 길
이 악물고 인내 새기며 자리매김 해가는데
곧 끝나갑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있었지만
이미 그 단계는 스스로 치뤄냈으니
누군가의 도움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나를 누나들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이것이 나의 삶이므로 나는 행복하고 자유롭네요
아버지 멋지게 늙은 숫사자로 나이스하게 살고
우리 형 지 닮은 딸에 나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착한 형수 만났고 울 가족들과 오손도손 사는 거
난 그 모습들 그리면 밥 안먹어도 배부릅니다.
마지막 배드민턴 나눌 때
형~ 술 먹지마라? 운동 꼭 많이혀라?
나쁜 친구들 다 버려라?
오래 살라믄 세가지 꼭 지켜라?
신신당부를 했는데..
요거 잘 지키고 있음 좋겠습니다.
시간 흘러흘러
내 머리에 하얀 겨울색 빼곡히 입혀지면
그 때 지난 약속 지키고 있는가 내 묻고
횟집서 소주잔 딱 한잔만 기울여야겠어요.
내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내 수호신이던 우리 순딩이 형
오래오래 붙어 잘먹고 잘살아라..^^
익명의 막둥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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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위. 이런 고민 여따 써도되요
이 고민이 생긴건 음... 애들이 점점 커갈수록에 뭔가 좀 알아가는 시기 등등이 겹쳐져
우리집은 방이 세개인데요
전망좋고 통풍 좋은 작은 방은 큰딸이 쓰고
다음 큰방이라고 불리는 방엔 둘째와 셋째딸이 같이 쓰고 있고
아주 작은, 현관옆 쬐깐방이 나와 아내가 운우지정을 나누다 잠들기도 하는 방이고
쬐깐방에서 계속 잘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 지는 이유는
아들 녀석이 늦게 잠들면서 꼭 낑겨 들어 오니까 ...
둘이 자기에도 꽉 붙어 자야 되는 정돈데 이넘이 가운데 끼면
잠자리가 굉장히 답답해져 먼저 잠이 깬 사람이 거의 거실로 나가, 자네요
이넘은 특히나 이불을 안 덮고 깔고 누우니
나같이 여름에도 이불을 덮는 넘은 답답함이 몸을 힘들게 하니까
거진 대부분 내가 거실에서 홑이불 덮고 자는 쪽이 많죠
겨울이면 좀 나은데 여름쪽으로 갈수록 딸들 눈에 띌까바
아내 한테도 몇번 혼났거든요
오늘 아침에 한참 꿀잠을 자다 느낌이 쎄해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세째딸이 옆에 누워 있는데 내 얼굴을 보고 있는거 같아
"언제부터 나와 잤어?" 물었더니
"좀전에 잠이깨서 나왔는데 ...아빠 거기 뽈록 튀어 나온거 뭐야?"
순간,
다행히 이불속에 아들넘이 갖고 놀다 흘린 총 장난감이 있어, 슥 꺼내 보여 주었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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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위. 요즘 박근혜정부 실세로 우병우 민정수석이 떠오르는...
국민들은 우병우를 잘 기억해야 한다...
노무현과 아주 인연이 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검사와의 대화'자리에서 평검사였던 우병우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몇학번 이냐'고 물어봤었다...
대한민국 국민들 노무현이 상고출신 고졸인걸 모르는 이가 없을진데
사법공무원인 검사가 판사출신 노무현의 학벌을 모를리 막무할터인데도
면전에서 조롱을 한거지...
그 이후 박연차 게이트 사건에서 노무현을 수사하던 중수부 검사였다..
노무현이 자살하기 전...노무현을 담당했던 검사로서 털어도 털어도 증거가 나오지 않자..
포괄적뇌물죄란 존재하지도 않은 전무후무한 죄를 창조해서 극한적 수치와 망신에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그능 승승장구를 거듭하여..
오늘날 실세소리 까지 듣는 지위에 오른다..
우병우....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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