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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정치에는 중립이 있지만 가치관에 중립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카테고리 없음 2016. 7. 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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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감동) 정치에는 중립이 있지만 가치관에 중립은 없습니다.2위.(감동)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3위.(수다) 그시절 결혼 풍습 이야기중의 이야기4위.(감동)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는 듯..5위.(수다) 침략된 나라의 불쌍한 우리들... 1위. 정치에는 중립이 있지만 가치관에 중립은 없습니다.
예로부터 중국이나 한국이나 선비들이 가장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게
중용(中庸)입니다.
편가름이 없고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도....
중용이라는 화두를 들고 제가 어떤 얘기를 하나 드릴까 합니다.
제게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벗이 다섯 명 입니다.
그 중 제 아이들에게 아비를 대신해서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스승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현직 대학교수이며 전공이 동양철학입니다.
이 친구에 대한 얘기를 해 드릴까 합니다.
(친구 자랑이 아니라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이에 대한 서술입니다.)
그 친구는 동양철학자가 되는 꿈으로 대학원을 성균관으로 갔었는데
국비연구원으로 선발이 되어 북경대학에서 5년을 수학하고 돌아온
한국에서는 썩 괜찮은 코스를 밟아온 엘리트입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문사철을 넘나드는 유능한 학자임에도
50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정식 교수로 임용이 되었습니다.
연구교수라는 타이틀로 여러 대학에 보따리 강사가 되어 전전하는데
희한하게도 중국의 교수들이 내한하여 공동 학술대회를 하면
아직 정식 교수가 아닌 제 친구가 대회를 주관하곤 했습니다.
제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중국의 여러 교수들이 제게 묻기를
"도대체 이선생(제 친구)같은 사람이 한국에서 대학 교수가 되지 못하면 누가 되는 거냐?"며
반문을 할 정도로 이미 중국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았는데도
정작 한국에서는 교수가 되질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사적 영역이라 모두 밝히기는 어렵지만 제 친구의 대학원 시절에
제 친구를 아끼던 한국의 동양철학(유림)의 태두라 불리울만한 노교수님과의
학문적 갈등 때문입니다.
그 노 교수님은 600년 전통의 성균관 유림을 이어온
자타가 공인하는 정통 성리학자인데
제 친구가 생각하는 동양철학의 본류는 성리학이 아니라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사상가 왕부지(王夫之)가 주창한 기철학(氣哲學)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받아들인 성리학은 공자왈 맹자왈만 하는
이론만을 밝히는 케케묵은 학문이니 이미 죽은 것이며
왕부지의 기철학이야말로 진짜 학문이라며 스승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왕부지의 기철학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류 성리학자가 아닌
화담 서경덕이나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받아 들인바가 있으며
중국에서는 후일 공산주의 사상의 이론적 토대가 된 학문입니다.
이론보다는 실증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친구는 스승과의 학문적인 갈등으로 인해
거의 20년 가량을 보따리 장수를 이어가는데 도중에 몇번
스승에게서 사상적 전향을 제안받았지만 끝내 거부를 하였고
연로한 스승이 죽고 난후 찾아가서는 정중한 예를 극진하게 올림으로써
학문을 떠나서 사제간의 도리를 다하였습니다.
제 친구는 정식 교수가 된 후
지금도 일주일에 2-3일은 연구실에서 밤을 셀 정도로 노력하는 진짜 학자입니다.
보따리 장수를 전전하던 어느날 제가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스승과의 괴리가 그렇게도 큰 것인가?
훌훌 털고 스승의 그늘로 들어가서 정식교수가 되면 안되겠나?"
그러자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 친구가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내가 아닌것을 아니라고 하지 못하는 순간 그건 도가 아니라네~
더더욱 나는 철학을 하는 사람이네"
"우리 조선의 학풍이 그렇게도 형식에 억매이고 사제간의 정에 이끌렸기에
조선이 중화사상에 물들어 500년을 엎드려 지냈는데도 그걸 극복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나부터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제 친구가 성격이 고장꼬장하여 타협을 모르는 외골수같은 사람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과도 늘 격의없이 부딫히며 토론하기에
매년 연말에 자신이 주관하는 학회 행사를 하면
자발적으로 한국 중국의 제자들이 적어도 수 백명씩 모입니다.
제 친구의 주장을 하나 더 첨언하자면 중용에 관한 정의는 이렇습니다.
중용이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간에서 서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가치판단이 애매한 영역에서 쓸데없는 자신의 혼자만의 고집을 피우지 말라는 것이지
객관적인 신념과 검증된 사실에 입각한 정의 앞에서는 과감하게 자신의 모든걸 내걸고
말할줄 아는게 중용이자 학자의 도다.
예부터 선비들은 중용에 힘쓰기 위한 방법으로 신독(愼獨)을 내세웠습니다.
신독이 무엇입니까?
독신주의가 아니라 혼자만의 독단적인 생각으로 살아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여럿이 함께 부대끼며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네가 느끼는 감정이나 다름이 없도록 치우치지 않아
혼자만의 오류에 빠지지 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길을 가다가 밭을 매는 아낙네가 알아 들을 수 있는게 말하는게 바로 도다"
라는 말과도 상통합니다.
원래 사기꾼의 말은 모호한 법입니다.
아고라에서도 다중이 이해되지 않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자신의 내면의 추악함을 위장하기 위해 인간적으로 보이려고
요란하거나 추악한 글을 내지르는 자를 비판하지 않고 감싸는건
중용이 아니라 허세일수도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인 중립은 있을 수가 있지만
올곧은 가치관을 모독하는 것에 대한 중립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굴종입니다.
중세 교황시대에 마녀사냥에 나선 카톨릭에 대해
대다수의 사제들조차 중립을 지킨다며 입을 다물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후 프란체스코 교황께서
카톨릭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더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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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시장 통에서 찐빵과 만두를
만들어 파는 어머니를 소개합니다.
일요일 오후,
아침부터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
후둑후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는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그치기는커녕
빗발이 점점 더 굵어지기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서둘러 가게를 정리한 뒤
우산 두 개를 들고 문을 나섭니다.
곧 바로 딸의 미술학원 앞으로 달려간 어머니는
학원 문을 열려다 말고 잠시 주춤 했습니다.
작업복에 낡은 슬리퍼,
앞치마엔 밀가루 반죽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모습을 보고
혹시라도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 딸이
상처를 입을까 걱정된 어머니는
건물 아래층에서 딸이 끝나길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던 어머니가
문득 3층 학원 창가를 올려다봤을 때,
마침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던 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머니는 반갑게 손짓을 했지만
딸은 못 본 척 얼른 몸을 숨겼다가
다시 삐죽 고개를 내밀고,
숨겼다가 얼굴을 내밀곤 할 뿐이 었습니다.
딸은 초라한 엄마가 기다리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그냥 돌아섰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어머니는
딸의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딸이 부끄러워할 것만 같아
한나절을 망설이던
어머니는 다 늦은 저녁에야
이웃집에 잠시 가게를 맡긴 뒤
부랴부랴 딸의 미술학원으로 갔습니다.
'끝나 버렸으면 어쩌지...'
다행히 전시장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보던 어머니는
한 그림 앞에서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비, 우산, 밀가루 반죽이 허옇게 묻은 앞치마,
그리고 낡은 신발.
그림 속엔 어머니가
학원 앞에서 딸을 기다리던 날의
초라한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딸은 창문 뒤에 숨어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가슴에 담았던 것입니다.
어느새 어머니 곁으로 다가온 딸이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모녀는 그 그림을 오래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 새벽편지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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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위. 그시절 결혼 풍습 이야기중의 이야기
잊혀진 그 시절 추억 이야기
"나는 본래 떨어요~!"
"나는 본래 떨어요~1"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그시절에 첫날밤을 엿듣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동네 아낙들이 첫날밤을 어떻게 보낼까?
호기심에 창호지문에 침발라 구멍을 뚫어 놓고
귀 기울리는 모습--
아마 이 이야기를 이해하실 현대 사람들이 있을런지요
지금세대야 결혼 적령기가 30대라고 하지만
반세기전 저편에는 결혼 적령기라는 나이가 없었습니다
가난한 집안 살림 "입" 줄인다고 열여섯 나이에 시집을 보냈고
열살 갓 넘은 나이면 부잣집 식모겸 애기 담살이를 보냈었지요경로당 김 할머니 올해 일흔 네살이라고 합니다
열여섯나이에 건너 동네 스물 여덟살 가난한 동네 총각에게
시집을 갔답니다
신랑 얼굴을 결혼식 첫날밤에 대면 할수가 있었지요
처음본 신랑 얼굴이 어찌나 험상궂게 생겼던지----자신도 모르게 몸이 사시나무 처럼 떨렸답니다
신랑이 왜 떠냐고 물었을때 대답은 열여섯살 신부는 모기소리로
"나는 본래 떨어요~!"
밤새도록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하도 어린 신부가 벌벌 떠니까 험상궂게 생긴 신랑도 손도 못 만지고
첫날밤을 보냈답니다밤새도록 신부는 벌벌떨었는데 떠는 모습이 딱했던지
새벽녁에 험상궂게 생긴 신랑 따뜻한 꿀물 한사발을 타다 주더랍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떨린다는 김할머니
그래도 아들 셋 딸셋 여섯아이 낳고 살았답니다
첫날밤 꿀물 타다준게 감사해서 정 붙여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몸은 벌벌 떨리지만
이제 저승에 먼저간 영감님이 그립다고 합니다
지금 세대는 생각할수도 없는 끔직한 일이지만 반세기전에는
세상 그렇게 사는게 원칙인줄 알고 살았다는 김할머니
손주들에게 하신 말씀이얘들아 지금
"너희들은 천사가 사는 세상에 살고 있어 "하십니다<페이지 위로 이동↑(클릭)>
. 4위.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는 듯..
어제까지 댓글로 서로 안부 전하던 사람들이..
글속에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개연성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채
그 글에 소명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그저 본인이 해석한 뜻이 진리인 양..
사람 잘못봤다..? 라..
얼마나 대단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있기에
이렇듯 쉽게 누군가를 재단하는지..
아무리 가벼운 싸이버 인연이라지만..
이건 좀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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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위. 침략된 나라의 불쌍한 우리들..
1952년 태어나서 스무살이 될 무렵까지
기와로 지붕이 되어있고 우물도 있는 우리 집은
스덴 숫가락 몇개 훔칠려는
아편쟁이들이 기웃거릴 정도로 부자였다,
일본에서 배운 능숙한 일본어 때문에왜놈들이 급하게 달아난 남부민동 아랫길의
근사한 일본집(적산가옥)을 2채나 건졌고
국제시장 점포도 인수한 아버지는
금새 부자가 되었고
일본놈 밑에서 배운 상술로 그 점포도 엄청 커졌지..
유기오 사변도 두 해 지나서 태어난 내가
의자를 지탱하여 걸음마를 시작할 때
"의자"를 "고시가께"로 배웠고
일본가옥이였기에 유리창이 엄청 많은 집 구조로
"유리"를 "가라수"라고 배웠으며
침략된 상처가 깊은 아버지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는지
"1,2,3,4.."도 "이찌,니"하는 일본말로 가르켰으며,내가 성장하여 열살이 넘었을 때
어쩌다 부부싸움 하는 아버지와 엄마는
나의 눈치를 살피며 일본말로 싸우기 시작했지만
아직 까지도 그 때 내 부모가 싸운 내용을 모른다,
다만 나는 침략 된 우리나라의
끝 자락에 매달려 공부한 역사와
우리들 끼리 싸운 4.19, 5.16, 5.18.기타등등
혼돈의 시절만 겪었을 뿐,
그렇게 내가 태어나기 2년 전
유기오를 빌미로 미국이 침략했을 때
맘보춤과 부루스의 리듬을 타고
골목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캬바레에서
물동이 호미자루 내팽개친 아줌마들이
뒤가 터진 스커트와 레이스 달린 브라우스를 입고
츄잉껌을 따닥따닥 씹어며 바람이 났지만,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는 전염병인지도 모르는 우린
일본의 침략방식과 판이하게 수법을 변화시킨
미국의 침범을 불쌍하게도 우방이라고 했다,
고구려 이후로 우리나라인 한반도는
언제나 침략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오래 전 몽고족이 내륙지방으로 쳐들어 왔고
임진왜란으로 남쪽의 여럿 해안 부락이 노략질 당했을 때,
젊고 이쁜 부녀자들은 칼을 꼬누는 그들의 겁탈에
연약한 우리들의 할머니들은쉽게 아랫도리를 주었겠지요,
그들이 겁탈을 하여 임신한 부녀자들은
남편을 속이고 부모를 속이고 자기들의 아이처럼
그 집 문중의 장자로,자식으로 성장시켜우리들의
또, 다른 조상으로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신들도 감히 당당한 단군의 자식인 정품이라고
장담하지 못 할 것이다,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동북아 견제지역인
오키나와 미군기지도 계약 만료가 되어
괌으로 이전하는 것은
지리적으로 너무 멀다고 판단한
침략근성이 세계최강이라는 미국은
한 주먹으로 끝낼 수 있는 북한을 시비꺼리로 삼아
우리나라를 도와주는 척
임시 거점용 기지로 제주를 군항으로 선택한 이유처럼
사드라는 무용지물의 무기도 팔아먹겠지,
미국은 물러서지 않는 침략의 근성으로
우리 정부와 군부에 어떤 압력과 사탕으로 꼬셨을까,?
너무 한심한 윗물 때문에
아름다운 제주도와 한반도는결국, 전쟁의...침략의...
요충지가 될 것이 너무도 자명한데
아직도 생각이 모잘라는 몇 부류들은
5,18을 폭동이라 하고
독립군을 테러리스트라 하며 친일파나 양키들을 상전 모시듯
지역을 쪼개어 또 분단시키는 그들의 농간에 놀아나서
아고라라는 작은 공간에도 들어와
해작질을 한다. (^Y^)
<일본에서 아버지 23살 때, 소화17년,>
<집에서, 단기 43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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