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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정현의 KBS압력 전화, 진짜 문제는 심기경호 대단한 조작원.그정보력에 감탄할 뿐.카테고리 없음 2016. 7. 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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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경제) 이정현의 KBS압력 전화, 진짜 문제는 심기경호2위.(경제) 대단한 조작원..그정보력에 감탄할 뿐..3위.(경제) 참여정부 문재인 비서실장과 박정부의 비서실장,,,, 4위.(경제) ◆이재명 한번이라도 더 꼬옥 안아드리고...5위.(경제) '証拠, … 세월호 범인을 지적하는 증거들 입니다.... 1위. 이정현의 KBS압력 전화, 진짜 문제는 심기경호
이정현의 KBS압력 전화, 진짜 문제는 심기경호
2016. 7. 1
재작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의 KBS에 대한 압력성 전화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야당과 언론은 이정현이 언론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보고 이를 공격하고 있고, 오늘 운영위에서 청와대 비서실장 이원종은 홍보수석의 업무였다고 감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이정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정현과 KBS 사이의 녹취록을 읽어본 필자는 진짜 문제는 언론에 대한 압력보다 대통령에 대한 심기 경호가 문제라는 사실을 느낄 수가 있었고, 결국 대통령 측근들의 과도한 심기 경호가 지금과 같은 국정의 혼란과 실패를 가져왔음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독재정권 시절이야 보도 통제가 가능했지만, 민주화 이후 어느 정권이든 청와대 홍보수석이나 언론을 담당하는 문화부 장관의 언론 개입시도와 마찰은 늘 있어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의 경우도 김대중 정권 시절 중앙일보 회장 사무실을 만취상태로 기습 방문하였다가 여론의 뭇매를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노무현 정권 또한 청와대 홍보수석이나 언론 비서관이 청와대와 대통령을 비난하는 기사를 빼달라는 요청은 많았습니다. 다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처럼 노골적으로 KBS나 MBC의 인사문제까지 개입하지 않았으며, 언론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 어느 정권에서나 청와대 홍보수석 또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사를 빼달라는 요구는 늘 있어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백번 양보하여 세월호 참사 당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 정부와 청와대 입장에서 해경에 대한 비난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던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도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이정현 홍보수석이 대통령의 심기를 고려하여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정현은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라는 말까지 동원하면서, 다른 아이템으로 대체하든지 녹음을 다시 해달라고 요구하자, 결국 김시곤 국장의 입에서 "제가 하여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볼게요"란 말을 얻어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만을 고려한 것으로,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사안과 현황에 대하여 청와대 참모들이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박근혜 정권 초기 진영 복지부 장관의 사퇴에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 그리고 각료간 심간한 소통의 부재가 문제로 들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에서도 대통령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한 채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정보를 각색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대한민국 최초로 과반이 넘는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탄생한 박근혜 정권이 지금과 같은 경제 실패를 비롯한 각종 국정의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는 대통령 측근들의 심기 경호가 만들고 있는 정보 각색과 이에 따른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입니다. 물론 대통령에 대한 이런 심기경호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보고는 아예 외면하려는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이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2003년 차떼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후폭풍 그리고 2012년 이명박 정권 실패에 따른 총선 참패의 위기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승리를 거둘 수 있던 비결은, 당시 상대의 헛발질에 따른 반사이익도 있었지만 대통령 자신이 직접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두지휘를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한 대통령은 위기 속에서 보여주었던 소통이 아니라, 오히려 소통을 거부한 채 혼자 스스로 고립의 길을 걸었고, 이를 지적하지 못하는 측근들이 충신이 아닌 간신의 역할만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대통령의 현실과 다른 상황 파악이나 외계어 구사는 대통령 스스로 뿐만 아니라, KBS보도 압력에서 드러난 것처럼 새누리당 친박과 청와대 참모들이 쓴소리를 하는 충신이 아닌 달콤한 소리만 하는 간신이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대통령이 성공하기 바랍니다. 대통령이 실패를 한다면 가장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국민이며, 그중에서도 취약계층인 저소득층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청와대를 개편하고 모든 분야가 아닌 대통령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국정은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어야만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 박정희의 성공은 장기영이나 남덕우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면서 그들에게 경제를 일임하면서 대통령은 이들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힘만 해주었기 때문이며, 또한 전두환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80년대 최고의 호황 경제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자신은 뒤로 물러나 경제 전문가 김재익에게 경제 대통령이라는 자격과 권한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에게 쓴 소리는 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정보를 각색하고 왜곡한 사람은 결국 대통령을 망칠 것입니다.
약수거사
(若水居士의 世上談論 http://blog.daum.net/geosa3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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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위. 대단한 조작원..그정보력에 감탄할 뿐..
김정은 체중
130 키로
측근들 걱정에 잠못 이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김정은 김정은...............
김정은 관사에 첩자라도 스며들었는가??
내밀한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아네..
근디
저런거
탈부기들이 나와서 종일 떠드는 소리인디...
그건 그렇고....
평양에 잇는 김정은 동향을
우찌 이나라 대통이라는 그네보다 더 잘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김정은 말고
그네가 뭐하는지
그거나 좀 자세히 알자 ..
특히 청기와가 어케 돌아가는지....
북한타령 이제 그민좀하자
어차피 니덜 말대로 조만간 망할것들인디
뭘 그케 호들갑인지...ㅊㅊ
저러다 자폭하것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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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위. 참여정부 문재인 비서실장과 박정부의 비서실장,,,,
이정현의 KBS보도 외압사건으로 박그네를 극구 변호하고나선
이원종비서실장의 나이가 현재 만 75세.
앞서 비서실장였던 허태열,김기춘,이병기가 비서실장으로
임명될 때의 나이를 보고
"의자에 죽치고앉아 지시사항만 내리는 자리가 아닐텐데 노인으로 뭐가 돌아가겠나,,,"
회의적시선으로 봤던 이유는
참여정부 때 문재인 비서실장의 격무로인한 생이빨이 10개나 흔들려
임플란트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을 기억하고있었기 때문이다.
특전사 출신,등산,스쿠버다이빙 등등 만능 스포츠맨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체력를 지녔고
오십초반에 임명된 비서실장 자리가 얼마나 호된 자리였으면
이빨이 나가고 건강이 악화되어 청와대를 떠났겠나?(탄핵정국에 다시 돌아왔지만,,)
대통령의 명에 따라 문재인은 문제가 있는 현장을 자주 방문했다.
예를들어 쌍용자동차 시위 현장,
천성산터널 반대 지율비구니의 단식농성장,
((천성산 도룡뇽이 사라진다고 단식했지만 터널 완공 후 역학조사 결과 도룡뇽 숫자는
더 늘어났고,지율은 묭박의 4대강엔 모르쇠, 수경스님이 4대강 반대 분신자살,))
참여정부는 이명박그네처럼 대화를 끊어버리고 공권력만 투입하는 진압일변도가 아닌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그 모든 것을 오로지 대화로 풀려고했던 것이고
사람을 설득해야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곳으로 문재인은 사리지않고 갔고
이게 격무 중 격무가 아니면 무엇인가?
박그네 비서실장 출신 중 누가 그 고령에 문재인처럼 현장방문으로 설득을 하는 등
몸 사라지 않은 자 누가 있었나? 안락한 의자에 파묻혀 지시사항만 내리고 있겠지,,,
박그네옆에는 사람이 없단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령의 비서실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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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위. ◆이재명 한번이라도 더 꼬옥 안아드리고...
1915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안 여사는 신한민보와 흥사단, 3·1 여성동지회 등에서 활동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정보장교와 해군 최초의 여성 병기 교관으로 활약했다. 안 여사는 슬하에 아들 필립 커디, 딸 크리스틴 커디 등을 두고 지난 6월 24일(현지시각) 미국 LA 자택에서 영면했다.
2015.07.03.
이재명 성남시장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故 안수산 여사 LA 장례식에 조문단을 파견했다.
성남시 전형수 행정기획국장을 단장으로 한 조문단 3명은 30일 오후 3시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이들은 다음 달 2일 장례식(LA 자유의전당)에 참석해 유족에게 이 시장의 친서와 태극기를 전달한다.
이 시장은 지난 4월 미국 방문길에 안 여사 자택을 방문해 감사패를 전달하고 환담했다.
이 시장은 “곱게 물들린 분홍 손톱을 보여주시면서 활짝 웃으시던 소녀같은 모습이,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제손을 꼭 잡아주시던 따뜻했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렇게 먼길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않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마지막 만남인줄 알았더라면 한번이라도 더 꼬옥 안아드리고, 진정 감사하다는 말씀 한번이라도 더 드렸을텐데...
그러지 못하고 쉽게 헤어진것만 같아 못내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선친의 유훈을 간직하고, 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않으셨던 여사님의 자랑스러운 삶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여기서 이루지 못한 일들이랑 후손들에게 맡기시고, 하늘나라에서는 선친 안창호 선생과 부디 함께 평화롭고 행복하시실 진심으로 바랍니다”라고 추모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다.
한편 도산 선생의 미국 망명 시절인 1915년에 태어난 故 안수산 여사(100)는 11세 때 도산 선생이 독립운동 단체 통합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나면서 아버지와 이별했다.
고인은 항상 “미국에서 살더라도 한국 정신을 잊지 말라고 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안 여사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오후 1시 별세했다.
고인은 생전 ‘아시안 아메리칸 저스티스 센터’가 수여하는 ‘미국 용기상’을 한인으로는 최초로 수상했다.
LA 카운티는 도산 기일인 지난 3월 10일을 ‘안수산 여사의 날’로 선포했다.
Green Wind - 아름다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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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위. '証拠, … 세월호 범인을 지적하는 증거들 입니다...
"범인은 너다 이녀나"<페이지 위로 이동↑(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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