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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516.모택동의 홍위병과 박근혜의 홍위병 중3 영어선생님의 막말.카테고리 없음 2016. 5. 27.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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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수다) 516....모택동의 홍위병과 박근혜의 홍위병2위.(고민) 중3 영어선생님의 막말....3위.(수다) 르완다 산 커피, 그리고 1994년 4위.(감동) 반기문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25위.(수다) "여름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이열치열.... 1위. 516....모택동의 홍위병과 박근혜의 홍위병
대한민국에서 5월 16일은 박정희 소장의 역사적인 쿠데타 거사일입니다.
1970년대 유신의 광기(狂氣)가 한창일때는
초중고부터 각종 정부기관은 물론 군인들까지 나서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관제 행사로 전국이 들썩거렸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김일성 3대를 찬양하는 카드섹션과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것과
거의 흡사했네요.
반민족 쿠데타를 위장하기 위해선지 학생들에게는 516민족상이라는
해괴한 명칭의 상이 수여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516 기념일이 있는데
중국의 집권층 그 누구도 쉬쉬하며 그 기념일을 추억하려 하지 않습니다.
올해 5월 16일은 중국 문화대혁명 5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봉건제국 청나라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을 하고
청나라의 뒤를 잇는 중국이 오늘날처럼 세계 두번째 강대국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중국 현대사는 그야말로 질곡의 연속이었습니다.
청나라가 망하고 전국각지의 군벌들이 각축을 벌이더니
마오쩌뚱이 국공내전에서 마침내 승리하고 1949년 중국을 건국한 후에
그에게 당면한 최우선의 과제는 정권의 안정과 인민의 배고픔을 극복하는 것이었는데
마오는 정치적 군사적인 재능은 뛰어났지만 경제적 행정가적인 능력은 없었습니다.
자신이 야심차게 추진한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는등 과오가 잇따르자
마오는 실용적 능력이 뒤어난 류샤오치(유소기)에게 당 주석을 맡기고
자신은 2선 후퇴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한번 맛본 권력을 쉽사리 포기한 정치인이 없듯
마오는 점차 잊혀져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불안감을 갖기 시작을 하는데
류샤오치와 덩샤오핑(등소평)등이 행하는 실용주의적인 방향에 대해서
점차 큰 의심을 품게 됩니다.
"저 녀석들이 혹시 궁극적으로는 나를 제거하러 들지는 않을까?"
마침내 내어준 권력을 되찾기 위해 마오는 중대한 음모를 계획합니다.
그것이 바로 문화대혁명(일명 문혁)입니다.
어느날 마오는 자신을 광적으로 지지하는 소수의 청년들에게 밀명을 하달합니다.
어느 나라에나 mb정부의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같은
완장만 채워주면 주인이 시키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확 달려들어서 무는
불독같은 부류의 인사들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지금 중국의 공산주의는 순수성을 잃고 수정주의자와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다."
"마오만이 오로지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마오의 이념에 반하는 모든 행위는
부정한 것이므로 모조리 타도의 대상이다"
이러한 슬로건을 자신을 추종하는 자신의 처인 쟝칭(강청)을 위시한 4인방에게 전파하여
북경대와 청화대를 비록한 대학생들과 전국 각지의 중고등학교의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그들에게 완장을 채워 주며 슬슬 자극하기 시작하자 드디어 그들은 홍위병을 조직하여
권력의 핵심인 류샤오치를 비롯한 지도층들을 매도하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올바른지 무엇이 타당한지에 대한 검증이나 토론의 기회도 없이
오로지 마오에게만 충성하는 4인방과 그들이 조직한 홍위병만이
초법적인 위치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습니다.
그들은 완장을 두르며 법위의 지위를 누립니다.
그들이 불법 탈법을 자행하며 마오의 이념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을 때려 죽이고 고문을 해도 전혀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칭송을 받습니다.
어제까지 대학 강단에 서 있던 스승조차 갑자기 홍위병 제자들에 의해서 부르조아로 매도가 되면서
하루아침에 몰매를 맞아 죽거나 맞아서 불구가 되었고
자아비판을 한 후 하방(下放)당하여 시골의 돼지 우릿간 청소를 담당하게 됩니다.
마오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산당 지도자들조차 모두 홍위병에게 사상검증을 받는데
과거 손톱만큼이라도 마오쩌뚱을 비판한 인사라면 그 누구도 숙청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마오의 뒤를 이어 국가 주석에 취임하는 등소평도 모진 수모를 겪은후
강서성의 트랙터 공장으로 하방되어 노동 교화형을 받았으며
그의 장남 등박방은 모진 박해를 받다가 하반신 불구가 되었고
현재의 국가 주석인 시진핑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도 이때 하방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기존의 모든 권위와 전통은 마오의 손짓과 발짓 하나로 철저히 부정되고 파괴가 되었고
그때부터 마오는 실질적인 황제로 군림하게 되는데
권력은 마오의 수족인 4인방과 그들을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홍위병들의 것인 반면에
지식인과 보편적 감정을 지닌 사람들은 마오가 죽는 날까지 거의 10여년을 숨죽이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미친듯 마오에게 맹종하는 이들은 살아남고 중용이 되지만
한올이라도 마오를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자라면 여지없이 숙청이 되었습니다.
76년 마침내 마오쩌둥이 죽자 등소평으로 대표되는 실용주의자들이
당시 당권을 쥐고 있던 화국봉을 설득하여
마오의 측근인 4인방을 체포하면서 문혁은 막을 내리지만
중국인민들의 가슴 속에 문혁은 기억에서 지우고픈 악몽이며
기념하고 싶은 생각조차 지우고 싶은 날입니다.
마오가 엄청난 술수로 정권을 획득하고자 홍위병을 동원한 결과로
중국의 지식인 사회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못지 않은 참담함을 겪었고
여러 사람들의 가슴에 불신과 눈치보기를 심어 주었기에
당시 문혁을 겪었던 중국인들에게
오늘날 문혁을 묻는것 자체가 커다란 결례입니다.
그런데 한때 중국인의 가슴에 커다란 상채기를 내며 정권의 나팔수로 활약한 홍위병이
세월이 흘러 다시 한국에 나타났습니다.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종편이라는 이름으로...
걱정원 알바라는 이름으로...
일베라는 이름으로...
종편의 진행자들과 패널들은 마오의 홍위병 못지 않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채 오로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종일
정권을 빨아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권력자에 반대한 세력은 그들에게 좌빨로 매도되며 반국가자로 낙인이 찍힙니다.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알바와 일베는 온을 점령하여 못된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어벙이 연합같은 쓰레기 할배 할매들은 영혼을 팔려고 거리로 나섭니다.
그러나 역사는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는 것임에
국민과 더불어 올바른 정치를 하는게 아니라
그러한 홍위병을 데리고 통치를 하려는 위정자의 말로는
마오가 죽고난 후 몰락한 4인방 못지 않게 비참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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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위. 중3 영어선생님의 막말....
안녕하세요
고민이 있는데... 이걸 학교에 알려야 하는지...조언을 좀 부탁드립니다
저희 딸은 중학교 3학년이고 영어 선생님(담임선생님은 아닙니다)이 아이들에게 심한폭언(제 기준으로)을 합니다.
영어선생님은 남자이고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정도 된다고 합니다
딸아이의 얘기를 들어보면 항상 화가나 있고 아이들에게
1) 개새끼야...
2) 총으로 쏘고싶다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 하고..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하고 처음 배정받은 학교라서 매우 젊으십니다(26살정도 여자선생님)
제가 교사들 사이의 일은 잘 모르지만... 영어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을 부를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빼고 이름을 부른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일 때문인지... 영어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을 울린적도 있다네요...
제 기준으로는 상식밖의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고(교과내용 수업보다는 화내는 시간이 더많고 잘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있는데.. 이걸 교감선생님이나 교장선생님께 알리고 싶어요..
근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학교에서일의 학부모가 괜한 간섭 하는거 같기도 하구요...
제가 아이들 학교 교육은 선생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이 면담이 있을때 외에는 절대로 학교에 연락을 하지 않아봐서요...
어찌 해야 할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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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위. 르완다 산 커피, 그리고 1994년
얼마전 산 커피는 르완다 산입니다. 거의 콜롬비아 산 수프레모만 마시다가, 좀 변화를 줘 보고 싶었습니다. 그냥 비슷한 가격대에서 고르기에 괜찮은 것 같아서, 3파운드의 볶은 커피콩이 담긴 포장은 15달러가 채 안 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었고, 늘 그렇듯 저는 아무생각없이 카트 안에 커피를 담았던 것 같습니다.
이곳 코스트코에서 이 정도 단위의 포장으로 팔리는 커피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 커피들이 있지만, 사우스센터나 4가에서 거대한 자체 커피 로스터를 돌리고 있는 코스트코는 그들의 자체 브랜드인 커클랜드 시그내처를 달아 아예 커피를 이리 볶아 냅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커피 신선도라는 면에 있어서는 꽤 호사를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사는 셈입니다.
그 신선도 때문에 그런가, 이 커피에서 저는 자꾸 와인을 느낍니다. 쌉싸래함, 꽃향기, 언젠가 마셨던 스페인의, 리오하보다는 뻬네데스에 가까운... 그렇지만 산도보다는 태닌의 느낌이 더 튀는. 아, 상상은 여기까지만. 이 이상 간다면 저는 오늘 비번 날임을 핑계삼아 낮술을 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커피 콩은 기름이 배어 나올 정도로 볶아냈습니다. 프렌치 로스트 스타일로. 그렇다면 에스프레소 스타일로 마시기도 좋은 커피라는 것. 알갱이는 콜롬비아 수프레모보다는 작습니다. 물론 배전의 과정이 길어 커피 콩의 크기가 조금은 줄어들기도 했겠지요. 그래서 잘 볶아내어 까맣고 기름이 흐르는 콩은 바로 이 커피를 길러내는 그 사람들의 피부마냥 반짝거리기도 합니다.
커피 콩을 가득 담은 넓은 바구니를 수건을 쓴 머리에 이고 가는 흑인 여성의 뒷모습. 아마 이 커피 봉지에 그려진 그림 때문에 저는 어렸을 때 머리에 뭔가를 이고 다니던 행상 아주머니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로 하여금 이 커피를 집어들도록 만들었을 터입니다. 지금도 머리에 뭘 이고 다니는 행상들이 한국에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 어쩌면 시골에서는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에겐 낮선 것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이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것의 바탕엔 다 저렇게 삶의 전선에서 최선을 다 해 왔던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리고 르완다 역시 20여년 전의 비극에서 헤어나오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들은 참 많은 면에서 닮았습니다.
내전은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었습니다. 1994년, 참 이래저래 잔인한 해였습니다. 20세기 유럽의 마지막 전쟁이라던 코소보 내전 사태는 일주일 새 80만이 넘는 사람들이 내전으로 학살당한 이 아프리카의 땅에 평화유지군이 들어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아프리카의 이 작은 오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평화 수호군을 자처하던 그들은 어차피 그들의 일이 아니라며 내버려뒀겠지만. 더 끔찍한 건, 이 수많은 사람들이 내전으로 희생당할 때 대포나 항공기나 탱크가 동원된 게 아니란 겁니다. 총, 그리고 마셰테라고 부르는 날이 넓적한 정글칼, 낫, 괭이, 망치...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역사 안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고, 르완다 역시 그 범주로 쉽게 넣을 수 있을 겁니다.
1994년 그 해,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이곳에서 '들을 귀 있는' 동포들은 시시각각 전해져 오는 뉴스에 부르르 떨었습니다. 미국은 그 해 3월부터 시작된 이른바 '북핵 핵위기'에 대해 강경책으로 일관하기 시작했고, 6월이 되면서 자국민에 대한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이곳에서 평화운동을 벌이던 동포들은 미국 내 양심세력들과 대오를 함께 하며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내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다녔고, 결국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알리는 데 최선을 다 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르완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그 해, 한반도에서는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 했던 겁니다. 그 해 5월 18일 이미 공습을 위한 명령이 내려졌고 한반도 해상에서는 다섯 척의 항공모함이 공습을 위한 대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니 미군 5만명, 한국군 4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고, 이미 한반도에서 한번 덴 경험이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후 있을 선거에서 민주당 정권이 재창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클린턴 행정부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때 이념으로 갈라져 싸웠다고 하지만, 정말 그 당시에 그 이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정확히 알고 싸움터에 나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군인들보다 더 비참했을 보통의 사람들, 그 백성들, 그 사람들에겐 무슨 죄가 있었을까요? 르완다는 후투족과 투치족으로 나뉘어 내전을 벌이고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지만, 학자들은 이곳에는 원래 후투나 투치의 개념이 없었으며 벨기에가 이곳을 식민지화하면서 이들의 분할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이런 개념을 만들어 퍼뜨렸다고 합니다. 한국의 지역감정, 더 정확히 말하면 지역차별이란 것과 무엇이 다른지요.
원래 쌉싸름함이 특징인 커피이고, 흙내음 속에 꽃내음이 살짝 퍼지는, 그런 특징이 있다고는 하는데, 어쨌든 커피가 시큼함은 없고 씁쓸함이 강조됩니다. 적당한 산미가 배어나는 수프레모와는 또 다른 맛이지만, 아마 저는 이 커피를 한 두어 주 동안은 꽤나 즐기겠지요. 그러나 이 커피 한 잔을 즐기는 것이, 어쩐지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들로 이어지는 것은 결국 내가 한국 사람이며, 아픈 역사들을 잊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어떤 다짐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할 시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앙가주망을 늘 요구하고 있으니.
시애틀에서...<페이지 위로 이동↑(클릭)>
. 4위. 반기문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2
그렇지 박할매 대리인이 하는 거 코미디다
그냥 박할매가 쭉 해라<페이지 위로 이동↑(클릭)>
. 5위. "여름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이열치열...
요즘 때이른 더위로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이상고온이 이어지고 있네요.
옛부터 날씨가 더우면 땀을 많이 흘려 입맛도 떨어지고 기운도 쇠진해 진다고 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입맛도 되찾고 더위에 지친 몸에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가마솥에 펄펄 끓는 보양음식을 먹었지요.
여름철 보양음식의 으뜸은 누가 뭐라해도 삼계탕,보신탕 등 뜨거운 음식들인데
삼복 더위에는 뜨거운 보신탕이나 삼계탕 국물에 밥 한그릇 말아먹고 나야
시원하다는 말과 함께 몸보신 잘했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래서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했는가 봅니다.
이열치열의 사전적 의미로는 열은 열로서 다스린다는 뜻이지요.
이는 곧 열이 날때에 땀을 낸다던지 더위를 뜨거운 국물을 마셔서 이긴다든지
힘은 힘으로 물리친다는 따위의 의미인데
하지만 그러한 단순한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항온동물"이기 때문이지요.
항온동물이란?
자신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 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체온을 조절 하는 동물이지요.
겨울에는 차가운 날씨 탓에 손발이나 피부의 혈관이 수축되어 피부의 온도가 떨어지면
오히려 뱃속은 혈액 공급이 쉬워지기 때문에 따뜻하게 된답니다.
겉이 뜨거워지면 속은 차가워지게 되는 것이라 하네요.
따라서 겉이 뜨거워지는 여름에 속이 냉해지는것은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여름에 배탈과 설사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지요
특히 위나 장이 약한 사람들이 여름에 덥다고 냉면처럼 찬음식을 먹고
배탈설사로 고생하는 경우를 많이 볼수가 있죠.
여러 음식중에서 보신탕과 삼계탕을 선호하는것은 개의 성질이 뜨겁기 때문이라 하네요
동의보감에도 "개의 성질이 따뜻하고 허리와 무릎을 데워주며 기력을 보해준다"
닭과 인삼 역시 뜨거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선호 하는 음식이기도 하구요.
때 이른 더위가 찾아왔네요
날이 갈수록 좀 더 더워지겠지요
보약보다도 더 소중한것은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이라 하네요
웃음 잃치 마시고 늘~~건강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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